관광객도 일회용품도 몰리는 섬, 제주의 탈 플라스틱 도전기('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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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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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가 반납한 건 다회용컵, 그리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것이다. 가족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는 그는 "일회용 컵 버릴 곳을 찾는 것보다 컵을 금방 헹궈서 자판기에 넣어보니 편하다"면서 "다만 반납기가 공항뿐 아니라 제주도 곳곳에 있다면 훨씬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오전 9시쯤 가족여행을 마치고 제주공항을 찾은 조하진(48, 경기도 성남)씨가 가족들이 여행 중 사용한 다회용컵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받고 있다.
스벅 일회용 컵, 내년부턴 제주서 못 볼 듯
지난달 6일 처음 설치된 이 자판기 이름은 SK그룹이 만든 사회적기업 행복커넥트가 운영하는 '해빗컵 반납기'. 제주도 내 일부 스타벅스에서는 이 다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 내주는데, 사용하고 씻은 컵을 여기에 넣으면 보증금을 1000원씩 내준다. 시각 인공지능(Vision AI)이 이물질 제거 여부를 확인한다. 이를 다시 행복커넥트가 수거해 세척작업을 한 뒤 스타벅스에 공급하는 구조다.
해빗컵 반납기는 제주공항과 스타벅스 시범매장 4곳에 설치돼있다. 스타벅스 측은 올해 안에 도내 모든 매장 26곳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 제주도의 '스벅 이용자'는 무조건 다회용 컵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올 4월 제주 차귀도에서 확인된 플라스틱 쓰레기들. 해변을 가득 채웠다. 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
해빗컵 반납기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에코제주 프로젝트'로 개발됐다. 에코프로젝트란 SK텔레콤이 7월부터 환경부와 제주특별자치도, 스타벅스코리아, 행복커넥트, 친환경 스타트업 오이스터에이블 등과 함께 진행하는 제주도의 탈 플라스틱 사업이다. 쓰레기를 0에 가깝게 만들자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기도 하다.
도내 사용 일회용 컵, 한 해 '6,300만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관광객만큼 카페도 집중되는 제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막 걸음마를 뗀 다회용 컵 사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에코제주 프로젝트'로 회수되는 컵은 하루 평균 1000개를 조금 넘는다. 다만 이용자 반응은 나쁘지 않다. 다회용 컵을 써본 시민들은 "어색하지만 환영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가족들과 4박 5일 여행을 마치고 제주공항을 찾은 김민서(46, 울산)씨는 "여행 4일째 방문한 스타벅스에서 이 컵을 받았다. 앞의 사흘과 다르게 4~5일 차는 일회용 컵을 거의 쓰지 않아 환경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세척이나 반납이 생각보다 쉬워 울산에도 같은 기계가 있다면 사용할 것 같다"고 했다.
제주시 도두이동에 위치한 행복커넥트 에코제주센터 세척장 내에 위치한 초음파 세척기. 제주도에서 회수된 다회용컵을 총 7단계로 세척해 스타벅스에 배송한다. 편광현 기자
첫 세척~포장 '7단계', 위생 우려 없는 편
세척장에선 ①애벌 세척(오염 심하면 분리 후 초음파 세척) ②소독 ③자동세척기 투입(고압세척-고온헹굼-열풍건조) ④고온 건조 ⑤UV살균 ⑥표면오염도 검사 ⑦외관 확인 후 포장 등의 과정을 거친다. 지난달 28일 이 센터를 찾았을 때는 다회용컵 1201개가 세척돼 스타벅스 매장에 배송됐다고 했다. 이날 나온 불량품은 8개. 모두 표면에 금이 가는 등 훼손이 발생한 것이었다. 위생 문제로 버려진 컵은 없었다. '코시국'(코로나 시국) 방역 때문에 굳이 일회용 컵을 써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스타벅스 제주칠성점. 직원은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들에게 '다회용컵만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편광현 기자
렌터카 빌렸는데 텀블러 따라온다
지난달 28일 오후 5시, 제주시 용담이동에 위치한 렌터카 업체 사무실 한편에 푸른컵 텀블러를 대여해주는 부스가 설치돼있다. 편광현 기자
푸른컵은 모든 방문객에게 제로 웨이스트 여행을 위한 가이드 맵도 제공한다. 여기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숙박업소·기념품 가게 8곳과 식당·카페 34곳이 표시돼있다. 해당 카페에 푸른컵 텀블러를 들고 가면 음료 가격의 5~10%를 할인받을 수 있다. 제주 기업과 자영업자가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카페 사장도 "일회용 컵보다 편해"
텀블러 사용에 동참한 카페들의 반응도 좋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카페 '그초록'을 운영하는 홍영우(41)씨는 "제주 토박이로서 푸른컵 취지가 너무 좋아서 바로 참여한다고 했다. 이 텀블러를 쓰는 손님이 하루 3~4명씩은 온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자 입장에선 텀블러를 가져오는 손님이 하나도 귀찮지 않다. 컵을 씻거나 일회용품 처리하는 것보다 오히려 편하다"고 강조했다.
'쓰레기 제로' 도매상 된 마을 모임
지금은 생리대 외에 면 돗자리, 대나무 칫솔, 유리 빨대, 와입스(면으로 된 휴지)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든다. 면이나 나무 등 친환경 소재만 쓴다. 소비자들도 여기에 호응한다. 지구별가게가 만든 브랜드 '소락'은 2018년부터 매 300% 넘는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플라스틱 프리' 제품들이 매달 수천 개씩 전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이경미(47) 함께하는그날 협동조합 대표는 "제주도는 연 관광객이 1500만이라 일회용품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고향에 쓰레기가 점점 늘어나는 게 눈에 보여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 제주의 산으로 바다로 가고 있지만, 시민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다시 '플라스틱 프리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의 꿈은 이제 시작됐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정종훈·편광현·백희연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장민순 리서처
